녹색평론 2023년 가을호 - 통권 183호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가 시작되었다. 후안무치한 일본정부와 이를 정당화해준 한국정부의 무책임함은 바다와 우리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방사능 오염의 시작도 끝도 아니다. 핵무기, 원전 등으로 지구에 쌓이기 시작한 인공 방사성물질은 ‘국익’과 ‘경제성’이라는 미명하에 매 순간 줄지 않고 누적될 뿐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을 유일선으로 간주하는 현대 산업자본주의 문명,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금권세력과 한 몸이 된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엘리트이다. 민중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색, 그리고 근본적인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지금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자, 가장 시급한 일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전체를 바꾸지 않고 ‘부작용’들만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이번 녹색평론 183호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 관련 현안들을 짚어보고, 국내외에서 망가지고 있는 강과 갯벌 등의 생태계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학살’(ecocide)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산업문명과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듣는다. 아울러 지난 호에 이은 연속특집으로, 코로나 3년 반의 문명사적 의미를 정리하고, 자급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가 시작되었다. 후안무치한 일본정부와 이를 정당화해준 한국정부의 무책임함은 바다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방사능 오염의 시작도 끝도 아니다. 1945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 이래 핵실험, 핵무장, 원전 가동 등으로 지구에 쌓이기 시작한 인공 방사성물질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1,500여만 년에 이르는 반감기로 인해) 매 순간 줄지 않고 누적될 뿐이다. 오염수 방류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여론 비중이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여론 비중보다 낮다. 정상 가동되는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은 인체에 무해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원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경제적 이득이 예상되는 선택 앞에서는 눈앞에 닥치지 않은 어떤 위험도 가볍게 여기는 문화가 너무도 만연해 있다.

결국 문제는 경제성장을 유일선으로 간주하는 현대 산업자본주의 문명,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금권세력과 한 몸이 된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엘리트이다. 현 체제하에서는 지속적 성장과 토건개발을 담보하지 않는 어떠한 대안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원전을 금지한다 해도,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묶어놓는다 해도 풍선의 다른 면이 부풀듯 또다른 ‘경제적’ 도구가 인류와 생태계를 공격할 것이다. 민중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엘리트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색, 그리고 근본적인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지금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자, 가장 시급한 일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전체를 바꾸지 않고 ‘부작용’들만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이번 녹색평론 183호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 관련 현안들을 짚어보고, 국내외에서 망가지고 있는 강과 갯벌 등의 생태계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학살’(ecocide)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산업문명과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듣는다. 아울러 지난 호에 이은 연속특집으로, 코로나 3년 반의 문명사적 의미를 정리하고, 자급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핵으로 오염된 바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946년 이래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양의 핵폐기물 투기/배출이 이루어졌는지를 지적하고, 수은 및 미세플라스틱 등에 의한 오염문제의 심각성 또한 짚어본다. 그는 향후 오염수 반대운동은 일본정부에 대한 비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전과 핵무장 등 모든 핵 활동에 대한 전면적 반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송기호(더불어민주당 송파구(을) 지역위원장)는 일본정부와 IAEA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을 둘러싼 은폐와 축소, 위험성을 국제법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를 아프게 지적한다. 한창훈(소설가)은 에세이를 통해 바다가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인지, 그리고 방류로 그것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를 들려준다. 손제민(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나카가와 야스오의 저서 《방사선 피폭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방사능 피폭기준이란 사실상 노동자, 시민들에게 피폭을 감당하도록 하여 핵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 국제기구, 정부가 정한 것으로, 방사능의 위험성이 철저히 과소평가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삽질’에 무너지는 생태계



생태계의 미래를 도외시하는 산업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폭주는 핵 관련 문제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각종 개발사업이 이 땅 곳곳에서 자연과 인간을 망가뜨리는 중이다.

최근 새만금 수라갯벌 생태계와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개봉한 황윤(영화감독)은 수라갯벌과의 운명적 만남, 7년의 촬영기간 중 목도한 갯벌 생태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신공항 건설을 막고 갯벌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20년에 걸친 헌신을 소개한다.

윤여일(제주대 학술연구교수)은 제주 월정리 해녀들의 동부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반대투쟁을 소개한다.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환경부’에서 개발 예정인 금호강 팔현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소개하고, 탐욕의 ‘삽질’을 비판한다. 수프라브하 세션(인도 작가)의 글은 무리한 댐 건설을 강행하려는 주정부에 맞서 강의 가치를 역설한다.



민주주의, 대안은 있는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변화이다. 곳곳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 산업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결탁을 막고 생태문명의 기초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소개한다.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은 대담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고, 탈자본을 위한 길로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친밀한 관계의 가치를 역설한다. 하승우(이후연구소 소장)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고민하며 이보 모슬리의 《민중의 이름으로》를 소개한다. 중간계급이 권력을 잡고 민중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위선적인 체제인 대의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김현우(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안적 정치체제로서 서구의 실험적 ‘기후민주주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정당책임제와 시민의회를 우리 정치의 현실적 대안으로 꼽는다.

김혜미(녹색당 부대표)는 올해 한국에서 열린 세계녹색당 총회와 독일 녹색당과의 교류를 소개하며, 청년 정치인으로서 한국 녹색정치의 현실과 지향점을 풀어놓는다. 황준서(성공회대 연구위원)는 국제기구 SEI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학살) 처벌운동의 진행과정과 환경파괴를 국제범죄로 규정한다는 것의 의의를 소개한다.



포스트 코로나 문명을 찾아서



코로나 3년 반은 우리에게 총체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우리는 코로나를 제대로 넘어설 수 있을까? [코로나 연속특집 2] 지면에서 백무산(시인)과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팬데믹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으로서 현대문명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코로나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도시문명과 자본주의적 이동, 그렇다면 이를 지양하고 우리가 향할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자급과 신농본주의, 새로운 삶의 방향



‘자급’은 코로나를 비롯해 각종 문제를 만들어낸 현대 산업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삶의 가치라 할 수 있다. 마리아 미즈(독일 사회학자, 2023년 작고)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대척점으로서, ‘상품의 생산’이 아닌 ‘삶의 생산’을 추구하는 새로운 관점으로서 자급을 강조한다. 웨스 잭슨(미국 랜드연구소 소장)은 자연생태계를 근간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경제를 추구하는 신농본주의에 대해서 풀어낸다.



영화 리뷰 ― 어느 부부의 귀농 이야기



정은정(농촌사회학 연구자)은 한 미국 부부의 귀농 과정을 다룬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작은 농장〉을 소개한다. 동물 영상 전문가 존과 요리 블로거 몰리 부부는 2011년 펀딩을 통해 농장을 마련, 귀농을 결행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후 8년간 이들 부부가 농장을 가꾸어가는 과정을 다룬 중간 보고서이다. 영화를 통해 좋은 농사란 어떤 것인지, 한국과 미국 농업현실은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서평과 시 ― 다양한 시선을 읽는다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청년 운동가 전범선과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정성헌의 대담집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를 통해 생명운동에 있어 세대 간 연대와 공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고영직(문학평론가)은 생태인문학자 유기쁨의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소개하며,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비인간 존재들과 공존하기 위한 인류학적 개념으로서 애니미즘을 개괄한다.

홍성욱(서울대 교수)은 이정의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에서 조선시대 종이 장인들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에 주목한다. 맹미선(과학 저술가)은 김동광의 《생명은 어떻게 정보가 되었는가》을 소개하며, 생명정보의 사회적 의미와 윤리를 검토한다. 장정우(농민, 농본 사무국장)는 젊은이들의 실험적 귀촌생활 보고서인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를 소개하며, 자신 또한 젊은 농민으로서 느낀 농촌의 이상과 현실을 풀어낸다.

전동균 시인은 〈예버덩〉과 〈잠들 때면〉, 안희연 시인은 〈부록 씨 삶으로 데려오기〉, 〈점등구간〉, 각각 두 편의 신작 시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