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세대의 자화상 / 양은혜, 화가

라디오를 듣던 중 한 고등학생에게 DJ가 꿈을 물어본다. 학생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건물주요라고 대답한다. 디제이는 웃으며 능청스럽게 그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고 응원한다. 그 순간 학생의 꿈이 무엇일까 기대하던 나의 궁금증은 무색해진다. 어쩌면 너무도 현실적이고 모두가 원하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신경이 좋아서 운동선수를 하라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고, 나는 무슨 운동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보인 맨발의 투혼을 지켜보던 중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운동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골프나 승마 같은 운동은 달리기나 멀리뛰기처럼 운동신경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의 넉넉한 경제력도 필요한 운동이었다. 그냥 평범한 집안의 형제가 넷이나 되는 나로서는 그만큼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고등학생의 대답은 우리가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서 갖추어져야 할 필수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홍학은 하얀색 털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라면서 먹이인 게나 새우로 인해 점점 분홍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태어나서 어떻게 먹여지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홍학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수저의 색깔로 인생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꿈을 꿀 수 있을지 말지부터 부모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 빚으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청년들, 월급을 받아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은 미뤄야만 하는 현실이 젊은이들을 지치게 만든다.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한 학생이 특정 여대만을 목표로 하길래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이유를 듣게 되었다

엄마가 그 대학 나오면 시집 잘 간대요.”

아이들의 꿈은 어째서 이렇게 물질주의적으로 가게 되었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 솔직한 걸까, 그게 우리의 꿈속에 숨어있는 진짜 꿈일까.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많은 규칙 속에서 기계처럼 살아간다. 현대인의 기계화, 도구화, 인간성 상실에 따른 인간 존재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인간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 문제인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인간 내부에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것들은 등한시되고 있다. 자본이 권력이 되고 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사회에서 그동안 힘들고 악착같이 현실에 매달리던 것에 허무함을 느끼고 개선할 필요를 느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는 삶의 방식이 욜로’(YOLO)이다. YOLOYou only live once!, ‘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뜻으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축하기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젊은이들의 성향을 뜻하는 말이다.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쓴다. 이들의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충동구매와 구별된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세태를 두고 저성장시대에 미래를 향한 기대를 접은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모습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욜로족의 양면처럼 나의 그림에는 서로 상반된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혈기왕성함과 무기력함, 가벼움과 진지함, 유쾌함과 무관심의 정서들은 모두 젊은이들이 성장기에서 겪는 방황과 혼란의 정서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 사이를 즐겁게 유희하면서 세대의 웃픈자화상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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