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흑백의 이분법 세계에 파묻힌 희망 / 허남웅, 영화평론가

봉준호 감독에게 흑백판은 흥행한 영화에 보상으로 뒤따르는 팬 서비스 차원이 아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강조점의 역할이다. 컬러는 색이 다채로워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야가 여러 군데로 분산된다. <기생충>은 지상과 반()지하와 지하를 구획하여 공간으로 계급을 확정한다. 각각의 공간을 채우는 정보들, 즉 집의 규모라든지, 창의 형태와 유무라든지, 다양한 계단 등으로 관객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게끔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와 다르게 두 개의 색만 존재하는 흑백은 카메라의 중심에 서는 대상, 특히 인물에 집중하게 한다. <기생충>은 잘 사는 이와 못 사는 이와 더 못 사는 이가 속한 공간을 경유하여 박 사장(이선균)과 기택(송강호) 가족과 근세(박명훈) 부부로 대표되는 인물의 얼굴로 드러나는 현대판 계급 우화다. <기생충 흑백판>은 흑백의 콘트라스트로 얼굴의 계급 풍광을 더욱 강조한다. 쨍한 햇빛이 카메라 렌즈에 반사되어 박 사장 가족의 얼굴에 빛의 후광을 씌운다면 기택 가족과 혈투를 벌여야 하는 근세 부부의 얼굴에는 무수한 멍과 핏자국이 얼룩져 있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본래 무서운영화다. 산수경석처럼 화석화된 계급 현실의 단면을 날카롭게 조감해서다. 보통 돈 많은 기업인에게 따라붙는 비도덕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리스펙트할 면모로 뿌리박힌다. 대만 카스텔라 사업을 말아먹고 각각 그대로 주저앉은 기택과 빚쟁이에 쫓겨 종적을 감춰야 했던 근세 사이에 박 사장이 제공하는 돈과 음식을 두고 벌이는 계급 사투로 반영된다. 못 살겠다, 갈아 보자가 아니라 못 살면 안 된다는 투쟁으로 격하하여 살아남은 쪽이 잘사는 이에 기생하는 현실은 계급 상승의 욕망을 지위 유지의 불안으로 잠식한다.

기택과 근세는 계급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공유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연대해야 하는 계급의 동지는 간데없고 살고 보자는 생존의 욕망만 나부껴 굴절한 심리가 공생의 가치를 좀먹는다. 이런 현실에서 갖지 못한 자는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뿐더러 계급을 판단하는 근거가 분열한다. ‘신흥 재벌박 사장을 향한 존경심은 차치하고 기택 가족의 침투(?)로 일자리를 뺏기고 목숨까지 잃을 지경인 근세의 부인 문광(이정은)은 자신을 발로 차 계단으로 굴러 떨어뜨린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언니는 좋은 분인데 나를 발로 확 밀었어.”

서로 힘든 처지는 이해해도 각자도생, 아니 각자기생해야 하는 까닭에 한쪽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은 비정(非情)하다. 정이 없는 세상은 현실을 이분법으로 보게 한다. 선과 악, 희극과 비극, 자본가와 노동자, 우리와 그들로 양분하는 현실의 조건을 시각화하는 데 명과 암이 확연한 흑백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컬러를 탈색해 온기를 날려버린 <기생충 흑백판>에서 체감하는 정서의 온도는 영하권이다.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의 박 사장네 전원 취업 과정을 장르로 접근해 재미를 줬다면 <기생충 흑백판>은 현실의 차가운 이면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

이 영화에는 잘 사는 자와 못 사는 자와 더 못 사는 자 외에 또 하나의 계급 공간이 숨겨져 있다. 바로 죽음이다. 갖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는 삶도 계급이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정현준)의 생일로 야기된 살육 파티에서 근세는 삶에서 죽음으로, 기택은 반지하에서 지하로 계급 이동한다. 계급 상승이 거의 막힌 현실에서 기택도 실은 반죽음의 상태다.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돈을 벌어 아버지를 지상으로 불러내겠다고 하지만, 상상에서나 가능할 뿐 실현은 요원하다. <기생충 흑백판>에서 유독 하얗게 빛나는 박 사장 저택 주변 야산의 눈 밑에 죽음으로 파묻힌 건 결국, 희망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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