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열음이라는 계절 / 피아니스트 손열음

“누군가 나에게 음악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은 감히 답하고 싶지 않다. 그 대답은 내 음악과 내 인생이 대신해 주었으면.”* 어느 날 눈길을 붙잡은 손열음(35)의 문장은 책의 물성을 감성으로 치환하며 음악이라는 언어를, 음악가의 언어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했다. 곧바로 이 젊은 거장에 맺힌 상(像)은 문장부호를 바꿔가며 관념에서 구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건반과 지면에 치열하게 써 내려간 문장은 그녀의 이름 열음(烈音)을 연상시킨다. 그 시간의 갈피 속에 펼쳐진 무대 위의 삶, 삶이라는 무대에서 관념과 구체의 언어로 직조해낸 음악 인생을 그녀의 말로 직접 들어보았다. 소녀처럼 수줍은 말투와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건네진 명료한 말에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주관이 담겨있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꿈은 늘 하나였어요. 다른 재주도 없었고요(웃음). 호기심이 욕구를 부르고, 애정이 욕구를 부르면서 계속하게 됐죠. 더 알고 싶고 해보고 싶은 거였지 꼭 해내야지 하는 성취에 대한 욕구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게 제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계속 담금질만 했다면 지치고 지루했을 텐데, ‘그냥 좋으니까’ 한 거죠.”

일반적인 음악 신동의 길 대신 평범한 학생으로 음악과 일상의 균형을 잃지 않은 그녀 앞에는 ‘최연소’ ‘음악 영재’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7년, 러시아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최연소 2위(1위 없음)를 시작으로 오벌린 국제 콩쿠르(1999), 독일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2001),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2002) 최연소 1위를 수상한 뒤 차이콥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2011)을 차지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화려한 이력은 현상일 뿐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오늘도 음악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그 현재 시제로 기록된 무대 위의 생(生)에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느껴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 무대의 힘을 빌려 저를 표현하죠(웃음). 무대에서는 어떻게든 상관없이 저에게 발언권이 있으니 흥미롭고 짜릿해요. 연예인들도 보면 의외로 내성적인 분들이 많다고 하잖아요. 누구나 표출에 대한 욕구가 있으니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무대 위 그녀의 페르소나는 고유의 문법으로 음악이라는 관념을 자유롭게 풀어낸다. 여기서 구심력이 되는 것은 ‘몰입’, 원심력은 ‘자유의지’이다. 찰나적인 시간 예술로서의 음악은 그 휘발성만큼 더욱 간절하고 아득하지만 역설적으로 내면에 가장 진한 잔상이 될 수도 있다.

“몰입의 순간이 없으면 곤란해요. 사실 그게 전부죠. 기악음악은 추상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강점이자 약점이에요. 이 예술의 출발점이 장벽이 되어 동상이몽의 예술이 될 수도 있죠. 이를 보완하는 역할로 글쓰기를 했어요. 의뢰를 받아 타의로 시작했지만 계속했던 건 그게 주요했죠. 글은 제가 원할 때까지 고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쩌면 음악(연주)은 신의 영역처럼 신비한 분야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관장이 아니니까…. 무대는 글과 달리 상호작용하는 자리에요. 그때의 분위기, 관객에 따라 제 음악도 충분히 달라지죠.”

정명화, 정경화 자매에 이어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 감독으로도 활약 중인 그녀는 이번 주제를 ‘베토벤’으로 잡았다고 한다. 올해가 탄생 250주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베토벤이라는 작곡가의 특수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이 음악제가 세계적인 경향에 진입해서 해외에서도 찾아오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에도 안정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훌륭한 음악가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부터 자긍심을 갖고 개개인이 음악제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차별화되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음악제에 앞서 5월에는 슈만 앨범 발매를 기념하여 전국투어 피아노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다(코로나19로 전 일정이 미정 혹은 연기된 상태).

“이번에는 슈만 작품으로만 구성했어요. 슈만의 음악이 익숙하지 않아서 다소 난해할 수는 있어요. 쇼팽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요. 보편적인 언어로 쓰이지 않고 은유적이고 암호 같은 음악이라 귀를 잘 기울여야 하는데,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죠. 제가 워낙 좋아해서 늘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용기 내봤어요(웃음).”

음악에 위로와 치유의 힘이 있다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만한 곡은 무엇일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베토벤’이라고 답했다. 극복에 대한 음악이기 때문에. 침잠하지 않고 뭔가를 끌어올리는 그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연주할 때마다 매번 다르다고. 작품은 그대로인데, 자신이 변하는 만큼 투영된다는 것. 음악과의 대화가 계속되는 이유이다.

“음악에는 ‘맞다’라는 말이 없고, 그때그때의 감정과 상태가 중요해요. 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건 이 예술은 기술적인 측면,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요즘 한창 자라나는 친구들을 보면 감이나 열정, 흥을 더 중시하지만 무조건 첫째는 기능이에요. 다음은 진짜 나다운 오리지널. 시류에 민감한 것보다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게 가장 나다운 거죠. 어떤 분야든 균형이 중요한데, 예술에 대한 냉정과 열정도 나뉘지 않고 함께하는 거예요.”

음악이 자신을 선택했고 천직을 만난 건 큰 축복이라고 한 그녀는 오직 음악으로만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음악보다 자신의 존재가 더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자양분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그녀의 글을 구어로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다독가로 알려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한 명만 꼽으라면 ‘토마스 만’이요. 내용, 문체, 명료한 듯 모호한 지점이 좋아요. 시대정신도 좋고. 민족주의로 빠지거나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독일인에게는 깊이 파고드는 면이 있어요. 표피적인 것을 배제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가려는 탐구 정신이. 저도 그 점이 좋지만 장단점은 분명 있죠. 음악도 관념적인데 모든 면에서 그런 점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 열음. 이 운명적인 명명으로 음악가, 인간 손열음으로서 값진 열매를 맺길 바란다. 냉정할 만큼 뜨거운 여름을, 열음이라는 계절을 연주하며.



글. 김신영 편집장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중앙북스, 2018, p.291



사진 ⓒAn, Woong Chul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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