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sohohouse

 

1995년 런던 소호 지구에 문을 연 소호 하우스는 ‘집처럼 편안한 곳’을 모토로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티를 선보였다.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집단의 허브가 된 소호 하우스는 시티 클럽이라는 장르의 독보적 브랜드로 성장하며 각국의 도시에 그들만의 집을 짓고 있다. 

 

 

안티테제와 시대의 변화로 생겨난 시티 클럽

예로부터 멤버십 클럽은 부와 권력 뒤에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신비의 신 ‘미트라 Mithra’를 숭배한 ‘미트라 밀교 (Mithraic Mysteries)’, 1700년대 가톨릭 건축가가 모여 건축 기술과 신앙을 나누던 ‘프리메이슨 집회소 (Masonic Lodges)’ 등 모두 자신들의 권위와 입지를 지키기 위한 은밀한 모임에 가까웠다. 19세기 이후에는 기득권을 얻은 자들의 쾌락을 위한 모임이 많았다. 특히 영국은 부동산이나 재산 상속으로 갑자기 부를 축적한 ‘누보 리치 nouveau riches’들이 모여 도박과 매춘 행위를 일삼았다. 20세기 초부터 런던에 생긴 멤버십 클럽은 컨트리클럽 country club 의 기반이 됐다. 당시 런던의 사람들은 도심 외곽의 평화로운 동네에서 휴식을 즐기거나 테니스, 승마 등 귀족적인 운동을 즐기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여전히 기득권층의 모임이란 전제가 붙었다. 멤버를 받기 전에 인종과 국적을 검토했으며, 여성의 가입을 금지하며 백인 우월주의 사상과 남성 중심 사회의 그릇된 통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21세기 말인 지금도 신사의 클럽은 여전히 높은 회비를 책정하거나 기존 회원의 추천을 요구할 뿐 아니라 금융, 정치, 법률, 의학계에 몸담은 남성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 이런 흐름을 뒤엎는 멤버십 클럽이 증가하고 있는데 20세기 초 활발한 신사의 클럽이 ‘컨트리클럽’이라면, 21세기 말에 태동한 멤버십 클럽은 ‘시티 클럽 city club’에 가깝다. 시티 클럽의 멤버들은 승마와 골프, 테니스 같은 엘리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높은 멤버십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도심 지역에서 평소처럼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일각에선 이런 클럽의 태동을 안티테제 antithesis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대변하는 대표적 멤버십 클럽이 1995년 런던 소호 지구 40 그리크 스트리트 Greek Street에 세워진 멤버십 클럽 ‘소호 하우스 Soho House’다.

 

런던의 힙타운에서 호스피탤리티 정신을 일깨운 닉 존스

1900년대 중·후반 소호 지구는 매춘과 마약, 성인용품 전문점, 스트립 바 같은 음지 산업이 활성화된 곳으로 런던 중심 지역임에도 비교적 물가가 낮아 이방인과 돈 없는 예술가들이 모이기 좋은 곳이었다. 이처럼 소호는 인종과 성별, 다양한 예술적 성향 등이 뒤섞이며 새로운 창의성을 송출하는 전초기지로 탈바꿈했고, 런던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이 됐다. 당시 런던 최고의 ‘힙타운’을 꼽자면 단연 소호일 것이다. 소호 하우스의 창립자 닉 존스 Nick Jones는 1980년대 후반 소호 지구에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먹기, 마시기, 낮잠(eat, drink, nap)’이며, 이 세 가지는 그의 삶의 목적이자 지표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소규모 레스토랑 ‘오버 더 톱 Over the Top’은 완벽하게 실패했고 닉은 2019년 10월에 나눈 매거진 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당시를 회상했다. “전 너무 안일했고, 고객은 정말로 똑똑했죠. 무엇을 배웠느냐고요? ‘고객이 원하지 않는 건 하지 말자. 레스토랑의 근본은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창조하는 게 아닌, 진심이 담긴 음식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죠.” 1992년 닉은 두 번째 레스토랑 ‘카페 보엠 Café Boheme’을 열었다. 이 레스토랑은 소호 지구에서도 프랑스 시인들이 자주 오가던 거리인 올드 콤프턴 스트리트 Old Compton Street 에 위치한 오래된 타운하우스 건물 1층에 자리했다. 닉은 카페 보엠이 프랑스 시인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벼운 식사 메뉴를 비롯해 프랑스 전통 요리 방식인 콩피 confit(시럽이나 기름을 사용해 식재료를 오랫동안 조리하는 기법)를 이용한 음식과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과 맥주, 재즈 공연 무대도 마련했다. 손님이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강요하기보다 손님이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 편히 즐기도록 한 것이 카페 보엠의 성공 요인이었고, 이는 오버 더 톱의 실패로 터득한 교훈이었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예술적 사교 모임

“손님을 진심으로 보살피는 것.” 닉이 미디어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언급하는 접객의 의미다. 그리고 그 실천이 바로 1995년에 선보인 창의적 멤버십 클럽 소호 하우스다. 소호하우스는 카페 보엠을 운영한 지 3년 만의 성과다. 한 레스토랑 대표가 권력과 부를 중심으로 모인 남성 위주의 멤버십 클럽과 달리 영화나 음악 산업 등에 종사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지극히 프라이빗한 멤버십 클럽을 열었다. 소호 하우스는 오픈하자마자 소호 지구 내 예술가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름 그대로 소호의 새로운 ‘집’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예술적인 사교 모임은 평등주의(egalitarian)에 입각한 소호 예술가들의 성향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당시 소호 하우스가 내세운 건 지위 상승을 위한 전략 모임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들의 교류와 독서 모임, 새로운 문화나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지식의 공유였다. 당연하게도 성 소수자를 포함한 성별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문을 열었다. 소호 하우스가 런던 멤버십 클럽의 판도를 뒤집은 것이다.

 

독점성과 민주성

닉이 소호 하우스를 오픈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다.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멤버십 클럽의 이름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한 곳(Home away from home)입니다.” 닉은 소호 하우스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환상의 집이길 바랐다. 결국 이는 소호하우스만의 독점성(exclusivity)이 됐다. 소호 하우스가 갖는 독점성은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소호 하우스의 멤버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연봉이나 집안, 국적이 아닌 소호 하우스에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지에 대한 설명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멤버가 되기 위한 지원서를 보냈다면 소호 하우스 관계자들이 자신을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전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이들의 멤버에 대한 편애는 오히려 소호 하우스를 ‘그들만의 리그’에 가둔다는 평가를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소호 하우스가 전통적인 상류층 클럽에 비해 민주적 방식으로 멤버를 선별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멤버십 비용이다. 지역 클럽 하우스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1113파운드(약 167만 원) 정도로 비교적 합리적이다. 게다가 사회 초년생 (18~27세)에겐 할인된 금액인 720파운드(약 107 만 원)를 받는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가 가입한 멤버십 클럽으로 알려진 ‘마럴라고 Mar-a-Lago’의 연간 비용이 1만4000달러(약 1624만 원)임을 상기한다면 소호 하우스가 폐쇄적이면서도 동시에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호 하우스가 전 세계 도시에 집을 짓는 방법

소호 하우스의 로고는 첫 번째 소호 하우스 건물의 형태인 정사각형 3층 3열 구조를 형상화한 것으로, 현관문을 열고 정사각형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자신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또 다른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실제로 소호 하우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편의 시설을 갖춘 완벽한 시티 클럽에 가깝다. 1995년에 설립한 이래로 소호 하우스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설과 자체 브랜드를 전개했는데, 여기엔 창립자 닉의 확고한 결단과 미래를 바라보는 예측 능력이 주효했다. 40 그리크 스트리트가 소호 지구를 상징하는 예술가의 허브로서 입지를 구축하던 1998년, 닉은 두 번째 소호 하우스를 도심이 아닌 영국 외곽의 작은 도시 배빙턴 Babington에 여는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배빙턴 하우스에 호텔처럼 객실을 마련했고, 더 오래 머무는 멤버들을 위해 배빙턴 지역의 자연에서 재료를 추출해 만든 스킨케어&스파 브랜드 ‘카우쉐드 Cowshed’를 론칭했다. 닉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멤버들이 침실과 스파 등의 편의 시설을 더 원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를 발판 삼아 하우스를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로 전 세계 도시에 27개의 소호 하우스를 열었으며 2020년 파리와 로마 그리고 텔아비브에 하우스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확장엔 미국의 유통 재벌이자 억만장자인 로널드 버클 Ronald Burkle의 영향도 한몫 했다. 그가 250만 파운드(약 371억)의 거금을 들여 소호 하우스의 지분을 60% 사들이면서 글로벌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점한 도시 대부분이 모두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거나 젊은 예술가들이 몰리는 지역으로서 새로운 문화가 지속적으로 태동하는 곳이다 보니 소호 하우스 또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중이다. 닉은 소호 하우스가 멤버와 그들이 사는 지역에 이로운, 건설적인 집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처럼 소호 하우스는 단순한 멤버십 클럽에서 벗어나 창립자의 생각과 하우스를 이용하는 멤버 그리고 하우스가 세워진 도시를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허브로써 그 역량을 넓혀가고 있다.

 











 



[출처] 매거진 B(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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