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A.P.C

 

프랑스 파리에서 1987년에 출발한 아페쎄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디자인의 옷을 선보인다. 창립자 장 투이투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한 브랜드는 일본산 셀비지 데님을 필두로 장식을 최소화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에 집중한 의류 아이템뿐 아니라 가죽 소재의 액세서리와 스니커즈, 예술적 감성이 담긴 음반과 향초 등의 라인업을 함께 전개하면서 고유의 문화를 창조해왔다.

 

 

본질에 충실한 아페쎄 디자인

‘창작과 제작의 작업실(Atelier de Production et de Création)’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에서 이니셜을 따온 아페쎄는 1987년 파리에서 남성복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이베르 87, 에테 Eté(여름) 88, 이베르 88 처럼 생산 연도와 시즌만 표시해 판매하다 세 시즌 후에야 아페쎄라는 라벨을 붙였다. 당시로 말하자면 브랜드 라벨이 패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로고’ 시대였기 때문에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생략한 아페쎄의 ‘신비주의’ 전략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론적으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페쎄는 특별한 디자인이랄 것도 없어 보이는 심플한 티셔츠와 스웨터, 캐주얼한 재킷 같은 베이식 아이템을 고급이라고 선보였다. 심지어 로고도 없이. 티셔츠, 후디, 데님 팬츠로 시작해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선보인 러닝화까지, 아메리칸 캐주얼에 특유의 미니멀한 터치를 가미해 재가공한 다음 세계적으로 판매고를 올리는 방식은 아페쎄가 지속해온 일종의 전략(문화)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일본 시장은 빠르고 크게 매료되었으며, 아페쎄 성장의 주요한 동력이 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일본 패션은 아메리칸 캐주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데 세계대전 이후 일본으로 유입된 아메리칸 캐주얼의 유행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시대를 거치는 동안 각양각색으로 재해석한 일본식 아메리칸 캐주얼은 그 자체로 새로운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1890년대 미국에서 시작했으나 사실상 맥이 끊기다시피 한 셀비지 데님도 일본에서 조금씩 만들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아페쎄가 이를 제품화하면서 유럽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패션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셀비지 데님이라는 전설

셀비지 데님의 탄생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여행 중 가방을 분실한 장 투이투는 급하게 옷을 몇 벌 사야했는데, 죄다 워싱이 심하거나 장식이 촌스러운 데님 팬츠가 전부여서 그는 직접 데님 팬츠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생지를 얻어 데님팬츠를 한 벌 만든 그는 일본 섬유 회사 가이하라에 찾아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비슷하지만 좀 더 괜찮은 원단을 독점 공급받기로 약속했다. 아페쎄의 셀비지 데님 팬츠가 히트를 치자 ‘로 데님’ 혹은 ‘드라이 dry 데님’이라는 이름으로 생지의 느낌을 살린 데님 룩이 인기를 모았으며, 누디진 Nudie Jeans이나 쓰리 바이 원 3x1처럼 일본 셀비지 원단을 사용하는 데님 전문 브랜드도 생겨났다. 이후 많은 브랜드가 가이하라에 ‘아페쎄 데님’을 요구했지만, 대략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가이하라는 한 번도 그 소재를 공개한 적이 없다.

 


 

 

장 투이투가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 12인치 앨범인 <Svalutation/ Samba de Merda>.

장 투이투가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 12인치 앨범인 .

“장 투이투의 브랜딩 방식을 살펴보면 패션보다는 일종의 리코딩 작업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통적인 개념의 패션 레이블이라면 디자인과 마케팅, 세일즈가 한 지붕 아래에서 손발을 맞추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는 자신의 취향과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은 전문가를 선별해 일종의 피처링을 맡기는 것처럼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한 성장과 진화

아페쎄는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비즈니스 방식의 일종으로 활용한다. 장 투이투의 브랜딩 방식은 패션보다 일종의 리코딩 작업에 가깝다. 정통적인 개념의 패션 레이블이라면 디자인과 마케팅, 판매가 한 지붕 아래에서 손발을 맞추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는 자신의 취향과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은 전문가를 선별해 일종의 피처링을 맡기는 것처럼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아페쎄의 대표적 사람으로 불리는 인물은 거의 10년 넘게 아페쎄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인 ‹엠 르 매거진 뒤 몽드›의 패션 디렉터 수잔 콜러, 패션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아티스트 듀오 엠/엠 파리 등이 있다. 디자이너 바네사 시워드 역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인물이다. 아자로 Azzar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인 바네사 시워드의 오랜 팬임을 밝힌 장 투이투는 그에게 먼저 협업을 제안했고, 함께 다섯 번의 컬렉션을 치렀다. 이 외에도 장 투이투의 지휘 아래 이어진 일련의 피처링 작업은 200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의 쇠퇴 속에서도 아페쎄를 방어하는 영리한 전략이 됐다. 2009년 슈프림을 시작으로 반스 Vans, 칼하트 Wip, 나이키 등 권위 있는 아메리칸 스트리트 캐주얼웨어 브랜드와의 협업은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시대에 맞춰 진화하는 것에 힘을 실어줬으며, 이는 ‘데님 팬츠 이후’의 아페쎄를 건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페쎄의 독특한 ‘브랜드 프로듀싱’

자신의 취향과 창작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여온 그는 거대 자본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아페쎄의 지주회사인 아페쎄 홀딩스 A.P.C. Holdings의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아페쎄 내부에서 장 투이투와 함께 브랜드의 공동 프로듀서로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또 한 사람은 그의 아내이자 아트 디렉터인 쥐디트 투이투로 아페쎄 컬렉션 전반을 매니징하고, 남성복을 제외한 나머지 디자인 영역에서 프리랜서 계약으로 일하는 외부 디자이너를 이끄는 일을 도맡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거대 자본에 자신의 이름을 매각한 수많은 디자이너 레이블이 그랬듯 문어발식으로 브랜드를 확장하고 디자이너를 교체하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사이, 가족 체제를 고수한 장 투이투의 경영 방식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진화해나가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일련의 컬래버레이션은 물론이고, 2009년 유치원 A.P.E.를 설립해 직접 운영하거나(2019년 현재 시점 아페쎄는 A.P.E.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2011년 파리 루아얄 거리의 아페쎄 매장 지하에 비밀 창고를 만들어 브랜드 아카이브와 의류 리서치 자료를 보관·수집해 공개한다거나, 슬로 패션의 창시자로 불리는 디자이너 제시카 오그든과 함께 의류 제품을 만들고 남은 천을 활용해 퀼트 컬렉션을 선보이는 식으로 패션을 넘어 아트,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레이더

지난 2017년 아페쎄가 출판사 파이돈을 통해 출간한 ‹트랜스미션›은 시대와 긴밀하게 호흡해온 아페쎄의 발자취를 내밀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아페쎄뿐 아니라 패션계에서도 기념비적인 작업이었다. 사진가로는 브루스 웨버부터 코코 카피탄 Coco Capitan까지, 스타일리스트로는 카린 로이펠드부터 수잔 콜러까지 당대를 호령하는 실력파를 기용한 아페쎄의 광고 비주얼 작업이 집대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경계에서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장 투이투의 지난 30년이 빼곡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를 두 배 더 키우고 싶다. 패션계의 괴물들 속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창립 3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장 투이투가 ‹보그 Vouge› 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로, 아페쎄는 패션 레이블 바네사 시워드의 공동 투자에 이어 미국의 액티브 웨어 브랜드인 아웃도어 보이스에 대한 투자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또한 인터랙션이라는 일종의 캡슐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아페쎄만의 색다른 팀워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결코 컬래버레이션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단어는 이제 죽었다. 대신 그 인물과 우리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걸 나타내고 싶다.” 협업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상호작용’이라는 뜻의 인터랙션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비즈니스적 관계가 아니라 창작과 제작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서 상대와 교감한다는 의미를 담기 위함이다. 첫 번째 인터랙션 주자이던 뮤지션 키드 커디 Kid Cudi를 비롯해 수잔 콜러,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집단 브레인 데드 등으로 인터랙션 파트너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발렌시아가의 오랜 디자이너이던 샤를로트 슈네를 비롯해 재정비한 아페쎄의 크리에이티브팀은 아페쎄 룩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페쎄는 디자이너로서의 욕망을 말한 적이 없다. 조류에 민감한 트렌드세터로서 그들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이를 통해 아페쎄는 패션과 문화를 아우르는 독자적 스타일을 완성했고, 그 독자성이야말로 아페쎄의 힘일 것이다.

 











 



[출처] 매거진 B(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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