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소망 디자이너의 꿈 / 민병혜, 플로리스트·산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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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아날로그 스토리] 소망 디자이너의 꿈 / 민병혜, 플로리스트·산업 디자이너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한국에서 가까이 지내던 선배의 반가운 목소리였다. 토론토에서 국제산업디자인협회(ICSID)가 있어 십여 명의 선후배가 참석차 왔으니 꼭 다녀가라는 전화였다. 모든 일 제쳐놓고 찾아간 다운타운 회의장에는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이 자기 나라의 디자인 현황을 발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며 분주했다. 십여 년 만에 만나본 선후배들은 모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그 국제회의를 다음 해에 한국으로 유치하고자 각국 디자이너들을 상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너무나 빠듯한 일정이라 너도나도 건네주는 명함만 한 뭉치 받아들고는 아쉽게도 헤어졌다. 어둑어둑해지는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서글프고 쓸쓸한 생각이 밀려왔다.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계의 중추 역할을 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나란히 회의장을 누비는 선후배 디자이너들이 마치 화려한 무대 위의 백조 떼 같아 보이는 데 반해 나는 마치 갇힌 닭장에서 아침저녁 모이를 먹고 똑같은 달걀만 낳는 잿빛 암탉 같다는 초라한 생각에 왈칵 서러워졌다. 졸업 후 함께 교편을 잡았던 선후배들은 벌써 학과장, 디자인 실장, 심지어 학장이 된 분도 있었다. 나는 남편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 이민을 온 직후 인테리어 디자인, 보석 디자인 등 전공에 가까운 직장도 다녀보았으나, 이내 남편의 비즈니스를 돕게 되며 그 후 줄곧 비즈니스에 매달려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고 살던 때였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마음은 저녁노을같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바로 그때 “내게는 네가 공작새로 보이는데?”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네가 부러워하는 그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세상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지만, 사람들을 영원히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단다. 언젠가는 낡아지고 버려지는 생명이 없는 것들에 불과해. 너는 낙심해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나,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일으켜 세웠던 이야기들로 든든한 지팡이를 만들어 주고, 눈물이 가슴까지 차올라서 어두운 세월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복음의 빛을 담은 등을 만들어 주어 그 눈물방울들이 무지개로 반짝이게 해주고, 되는 일이 없다고 밤낮 불평만 하고, 원망하는 이들에게는 그 걸림돌들이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어 보이는 특별한 안경을 만들어 주렴. 너는 이제부터 영원한 행복, 평안, 위로 등을 디자인하는 음… ‘소망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어떨까?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왔던 긴 한숨의 기도의 끈들이 한 가닥 한 가닥 공작의 깃털이 되고 나와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문양이 되어 언젠가는 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활짝 펴는 멋진 공작새로 보인단다” 하시는 것 같았다.

움츠렸던 나의 가슴은 어느새 당당히 펴지며 나의 입에서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왔다. “공평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하나님.” 소망 디자이너라는 새 타이틀은 나의 삶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만을 중요시하던 일시적인 만족보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더 소중한 삶의 의미와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로만 꽉 차 있던 고정된 공간에 나의 이웃들을 차츰 초대하면서 관심의 영역이 넓어져 갔다. 그리고 허비한 것 같아 아쉬웠던 과거의 시간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면서 더 이상 나를 쓸쓸하게 만들지 못했다. 

나의 소망은 과연 무엇일까? 나를 가장 행복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작은 경험들이 나누어질 때, 그 이야기들이 상대방을 세우는 지팡이가, 날개가 되고 눈물 젖은 눈이 희망으로 다시 반짝이는 걸 지켜보는 기쁨은 세상에서의 어떠한 성취감보다 높았고, 깊은 샘물을 마신 듯 언제나 가슴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는 성경 말씀대로 나의 소망을 수시로 점검해가며 낙심한 나를 사랑으로 토닥이시고, 때로는 다정히 꾸짖기도 하시고, 기막힌 비유로 깜짝 감동하게 하며 나의 삶에 함께하신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메모해 놓고, 글로 다듬고, 또 그림을 그리며 바쁜 비즈니스를 틈틈이 준비해 나갔다.

가끔은 너무도 막막하고 길이 안 보일 때 전시회나 토론토 신문에도 연재되는 기회가 주어지며 나의 소망 디자이너의 꿈을 조심스레 다져나갔다. 드디어 오랜 기간의 준비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며 ‘소망 디자이너’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나와 하나님과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에서 힘을 얻었다는 여러 사람의 페이스북으로 인해 나의 소망도 점점 뿌리를 내리며 주위의 권고로 영어 버전도 올리게 되었다. 비로소 공작새의 꼬리를 조금씩 펼치고 있다. 영원한 행복이 모두에게 퍼져나가길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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