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은퇴 후 이끌린 퇴계의 고향 /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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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만남] 은퇴 후 이끌린 퇴계의 고향 /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나는 2008년부터 14년째 경북 안동에 자리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가족과 떨어져 머물고 있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니고, 공직 때 업무와도 무관한 분야에서 비상근 직책임에도 상근처럼 지내고 있다. 핵심적인 이유는 한 가지이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가치와의 만남때문이다.

34년간 경제부처에서 주로 근무했던 나에게 있어서 이 선비 수련 업무는 매우 생소한 분야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연결고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옛것에 관심이 높아 역사 과목을 가장 좋아했고, 그래서 학부 전공도 사학을 선택했다. 재학 중 답사했던 안동댐 수몰 전 도산서원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공직생활 중에도 틈틈이 가벼운 역사책을 읽고 유적지를 찾곤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퇴계 종가와 인연도 맺어져 이따금 드나들었다. 어떤 여가선용보다도 선현의 얼이 서린 곳을 찾는 것이 취향에 맞는 즐거운 삶이었다.

2005년 초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런 생활은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071월 수련원으로부터 이사장직 제안을 받게 되었다. 비상근 이사장이니 1년에 한두 번 이사회 때 오면 된다고 했지만 난감했다. 미술 감상을 좋아하는 것과 미술관 관장을 맡는 것은 별개 아닌가. 당시 나는 이사장을 맡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퇴계 선생의 학문과 선비정신에 관한 전문지식도, 이곳 전통 유가 가문과 세교(世交)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고사한 끝에 평이사로만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081월 하순, 나에게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새벽어둠 속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에 6주간 깁스를 했는데, 이 와중에 열린 수련원 정기총회에서 내가 궐석 상태에서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사장을 맡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아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깁스를 풀고 나서 지팡이를 짚고 도산으로 내려왔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더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내려와서 느낀 감동과 충격은 너무나 컸다. 특히 퇴계가 남긴 인간적인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상대적 약자인 나이 어린 제자, 집안 여인, 심지어 하인에게까지 자신은 겸손하게 처신하고 그들을 아끼며 보듬은 일이 일상사였다. 더 놀라운 것은 500년 전 퇴계의 삶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아흔 살인 퇴계 16대 종손(이근필 옹)은 수련생이든 손님이든 종택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깍듯이 맞이한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조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들려준다. 손수 쓴 붓글씨를 한 장씩 나누어주며 제 낙서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대문 밖까지 나와 작별 인사를 한다. 종택과 가까이 자리한 이육사문학관에 가면 퇴계 14대손 육사의 따님(이옥비 여사, 81)이 또한 자신을 낮추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런 분들을 매일같이 보면서 그때까지 그런대로 살아왔다는 자만심이 여지없이 부서졌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에 비례하여 감동은 배가되었고, 즐거움을 찾아 도산행은 더 잦아졌다. 그 결과 1년에 한두 번 오면 된다던 곳을 상주하다시피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느낀 것을 가족과 지인, 그리고 수련원을 찾는 분들에게 들려주면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다. 퇴계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고, 이제부터 그분처럼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겸손과 배려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다. 선비수련생도 점점 늘어나 내가 내려오기 전 2,800여 명(2007)에서 코로나19 직전(2019)에는 한 해 동안 186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감사하기 그지없다. 2017년부터는 도산서원참알기도우미 해설 봉사단을 꾸려 서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천원 권 지폐 뒷면 그림 현장에서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퇴계의 길을 권유한다. 그 사이 책도 3권을 펴내 인간 퇴계의 면모를 더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작년 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이 여러 날 퇴계와 함께하도록 새로운 시도를 했다. 450년 전 선생이 만류하는 임금에게 간청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갔던 마지막 귀향길 걷기 재현 행사였다. 당시 선생의 일정과 코스에 맞춰 13일 동안 서울에서 안동 도산까지 800리를 완주했다. 매일 30명이 넘는 분들이 따랐다. 이 경험을 살려 더 많은 이들이 언제나 갈 수 있는 길이 되도록 퇴계의 길안내서도 곧 출간한다. 그 길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가야 하는 사람됨의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퇴계와 교감하며 퇴계처럼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염원한다.

 

 

*1945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학교 사학과 및 행정대학원 졸업. 5대 통계청 청장, 18대 조달청 청장, 기획예산처 장관, 5대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등 역임. 청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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