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판, 소리를 열다 /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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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아름다운 人터뷰] 판, 소리를 열다 /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교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음악은 어쩌면 마음에 명중하는 가장 명징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언어의 추상성은 결국 구체성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그 언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적의 안나 예이츠(Anna Yates-Lu) 교수와 판소리의 만남도 그랬다. 한국어를 모른 상태에서 조우했던 판소리는 하나의 강렬한 언어로 다가왔다. 소리꾼 즉, 창자의 ‘노래(소리)’와 ‘몸짓(발림)’만으로도 절로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동하면서 서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다가 지난해 9월 최연소로 서울대학교 국악과 조교수에 임용된 그녀는 판소리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석사는 정치학이었는데, 동아시아의 정치와 대중음악과의 관계에 대한 수업에서 이어진, 정말 점수 때문에 들었던 동아시아 전통 음악에 대한 수업에서 국악을 처음 들었어요. 판소리도 그때 접했죠. 그런데 어느 날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직접 판소리를 보고 놀랐어요. 수업에서는 ‘재밌네’ 정도였다면 현장에서는 ‘와, 이게 뭐지?’ 했죠(웃음). 적벽가의 대목을 공연하셨는데, 이자람 선생님의 ‘조자룡이 활 쏘는’ 장면과 명창 송순섭 선생님의 ‘새타령’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자막이 있어도 안 보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수업만 듣고, 공연을 보고 반해서 결국 남은 과제를 다 판소리에 대해 썼죠. 판소리는 제 인생을 바꾼 좋은 기회였어요.”

신명나는 판소리 한판이 열리면서 그녀의 인생에도 새로운 판이 열리기 시작했다. 강렬한 문화적 체험을 계기로 인류음악학(Ethnomusicology)으로 전공을 바꿨고, 런던대학교 아프리카 아시아 연구원(SOAS)에서 논문 <오늘의 판소리: 현대사회에서 전통과 창조성을 조화시키면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접 판소리 세계에 뛰어들어 연구의 깊이와 넓이를 더한 그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민혜성 명창을 사사하기도 했다. 인류음악학적 시각에서 전통에 정통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류음악학은 한곳의 음악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에요. 음악도 문화의 한 부분이니 그 사회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연구하죠. 연구 주제는 음악이지만 음악 분석이 아닌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체험 관찰과 현장 연구가 중요하죠. 음악을 직접 배우고 공연하면서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거든요. 저는 대부분 ‘현대’에 집중해요. 현대인으로서 소리꾼의 삶은 어떤 것인지.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잖아요.”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그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2003) 판소리라는 예술의 위대함과 귀함을 거듭 강조했다. 현시대에 판소리를 선택한 소리꾼들에 대한 존경도 잊지 않았다. 소리를 얻어내는 지난한 과정은 시간의 지층에 새겨진 삶의 궤적이기에.  

“판소리를 배우면 ‘산공부’라는 것을 해요. 저는 득음은 못 했지만 연습을 많이 해서 온몸이 아픈 경험은 있어요. 그때 ‘소리몸살’이라는 표현을 알게 됐죠. 산공부를 하면 목이 쉬는데, 감기로 쉬면 일단 중단해야 하지만 공부 때문이면 계속해야 해요. 그것을 극복해야 더 좋은 소리가 나오거든요. 근육을 만들려면 근육이 살짝 찢어져야 커진다고 들었는데, 마찬가지죠. 물론 피를 토해야 득음한다는 건 오해예요. 평생 목이 쉬지 않은 소리꾼도 있죠. 갈수록 그런 목소리의 가치가 느껴지더라고요. 긴 세월을 유지한 거잖아요. 소리꾼들이 존경스러워요.”

판소리의 생명력은 무엇에 있을까. 흡인력 있는 노래와 시대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고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보편성을 확보한 특수성에. 그녀는 판소리만의 ‘현장성’과 ‘표현력’, 그리고 ‘현재성’에 방점을 찍었다. 

“국악은 과거다, 현재 생활과 관계없다고들 하는데, 현대 사람들이 전통을 선택한 거잖아요. 그만큼 현재가 중요하죠. 과거에 대한 개방성은 늘 갖고 있어야 하고요. 판소리에는 한과 흥이 있고, 표현력도 정말 강해요. 조자룡이 활 쏘는 대목은 이야기를 몰라도 다이내믹하고, 판소리의 다양성도 느낄 수 있죠. 심 봉사가 눈뜨는 장면은 비극에서 희극으로 가는과정이 다 보여서 판소리의 표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장면들이에요. 단, 현장에서 봐야 더 실감나겠죠? 제가 좋은 선생님을 만났듯이 재미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제대로 접하면 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판소리는 소리꾼, 고수, 관객이 함께 벌이는 치열한 삶의 한판이다. 소리꾼과 고수가 밀면 관객이 당기고 또 그 반대가 되는 합(合)의 미학이다. 특히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연예술인 것. 그렇다면 멋과 맛이 상응하고 한과 흥이 조응하는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그녀가 꼽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아, 고민된다. 음…, 흥부 마누라요(웃음). 흥부는 좀 정신없고 매번 실수하는데, 마누라는 늘 옳은 말을 하잖아요. 옥스퍼드에서 강의할 때, 흥부가 매 맞는 장면에서 왜 놀부는 흥부 가족을 다 먹여줘야 하냐고 학생이 묻더라고요. 시대에 따라 다른 생각과 시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궁가에도 디테일이 많아서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죠. 이야기를 살펴보면 현대사회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어요.”

판소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인간을 바로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물이 아닌 생물로서 실존하며. 이는 곧 고전의 활력이다. 여기서 견지해야 할 태도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연구자로서 원형(原型)이 최고라는 생각은 있지만, 음악의 다양성을 환영하는 개방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전통도, 퓨전도 있는. 그런데 법(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바뀌어도 원형에 집중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모든 시도가 다 좋을 순 없어도 시도할 용기는 줘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이날치’처럼 국악이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긍정적이에요. 요즘 진행 중인 연구는 현대사회에서 영화 콘텐츠, SNS 등을 활용하는 문제인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봐야죠. 과거와 현재를 잘 봐야 미래를 향한 길을 걸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박사 과정을 고민하고 있을 때, 지도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고 한다. “(연구 주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지금은 어떨까. 그녀는 계속 열심히 사랑할 거라며 엷은 미소를 보였다. 인터뷰의 장을 닫으며 앞으로 그녀가 펼쳐낼 뜨거운 삶의 한판을 기대해본다. 시대의 창(窓)이 되어준 창(唱)의 오늘과 내일도. 

 

글. 김신영 편집장

사진. 유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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