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새로이 좋아하는 것 / 오지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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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아날로그 스토리] 새로이 좋아하는 것 / 오지은, 가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난로를 샀다. 시작은 캠핑이었다. 그것도 겨울 캠핑. 겨울만 되면 혼자 조용한 곳으로 캠핑을 떠나는 고등학생이 나오는 만화를 보고 마음에 불이 붙어 캠핑 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달한 곳이 난로, 그것도 등유 난로였다. 

난로에 대한 별다른 추억은 없다.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내가 다닐 땐 국민학교)의 교실에 있던 난로 정도다. 아이들끼리 돌아가면서 땔감을 가져오는 당번을 했다. 부서진 의자 같은 것이 땔감에 섞여 있어 튀어나온 못에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얼어버린 손으로 까슬한 나무토막을 잡아 운반통에 넣는 것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교실 한가운데에 있던 커다랗고 투박한 난로는 초등학교 아이가 좋아할 구석이 전혀 없었다. 세련된 모양도 아니었고, 위험해 보였고, 결정적으로 별로 따뜻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겨울의 차갑고 딱딱한 땅에 겨우 천 하나로 이루어진 텐트를 치고 침낭에 들어가 잠이 드는 것은 공포스러웠다. 오죽하면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야외 취침을 최고의 벌칙으로 걸었을까. 나는 벌칙을 받고 싶지 않기에 어떻게 해야 따뜻할 수 있을지를 열심히 연구했다. 요즘은 캠핑장에 시설이 좋아서 전기담요까지 쓴다고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한적한 강가. 역시 등유 난로밖에 답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구입한 등유 난로. 그리고 기타 등등의 장비. 숟가락 하나까지 전부 갖추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캠핑을 하러 갈 순 없어 일단 난로는 작업실에 두었다. 마침(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 작업실은 상당히 추웠다. 따뜻한 시절에 방을 얻어 몰랐는데 겨울이 오니 보통 추위가 아니었다. 일단 바닥은 전기 난방이라 난방이 안 되는 것에 가깝고, 매력 포인트였던 커다란 외겹 창은 냉기의 주범이었다. 그래, 지금 생각이 났다. 벽에 있는 결로 자국을 보고 ‘겨울엔 많이 춥나요?’ 하고 물어보니 부동산 사람이 눈을 피하며 ‘잠만 안 자면 괜찮지 않을까요’ 하고 대답했었지. 

등유 난로는 역시 간단치 않았다. 일단 기름을 주유소에서 사 와야 한다. 그리고 주유구를 열어 펌프로 기름을 넣어야 한다. 당연히 자동이 아니기에 기름이 넘치지 않도록 바늘을 잘 보고 있어야 한다. 맨 처음에는 심지가 충분히 적셔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이 추운 날씨에 창문을 열고 다이얼을 돌려 불을 붙인다. 불꽃의 크기도 조절해야 한다. 21세기에 이런 구닥다리 아이템을 사다니! 

그런데 이게 해보니 이상한 재미가 있었다. 기름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쪼르륵 넣는 것도, 일산화탄소 중독이 두려워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하는 것도, 다이얼을 돌려 불을 붙일 때 나는 삐- 하는 경고음도 왠지 조금 마음에 들었다. 난로에 있는 작은 창에 일렁이는 불꽃을 보는 것과 난로 위에 물을 가득 채운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올려놓고 쉭쉭 하고 김이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타 온 커피가 너무 진하면 그 위에 난로로 끓인 물을 붓는다. 전기 주전자도 있지만, 왠지 잘 안 쓰게 되었다. 주전자 손잡이가 뜨거워 옷을 길게 빼서 감싸 쥐고 물을 부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그 불편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난로는 참 따뜻했다. 아무래도 난 등유 난로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좋아하는 것들이 줄어가는 느낌에 아득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새로이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마음에 빛이 난다. 낡은 스테인리스 주전자도, 찬장 가득 쌓여있던 티백도, 안 쓰던 머그컵도 얼마 전부터 내 마음속에서 새로워졌다. 환기를 하고, 다이얼을 돌리고, 불꽃을 조절하고, 주전자에 물을 채우는 귀찮은 일을 할 때마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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